2025년 10월 29일, 올해 국정감사 시즌이 반환점을 돌면서 국민적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특히 유영하 무소속 의원이 감사 도중 고릴라로 보이는 그림을 스케치한 사실이 알려지며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유 의원은 “날 선 질의·답변 속에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즉흥적 낙서”라고 해명했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국감장을 화실로 착각한 것 아니냐”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검찰개혁·법제사법위원회 현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정작 집중돼야 할 정책 논의가 의원 개인의 태도 문제로 빛을 잃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국민 다수는 고질적인 ‘국감 품격’ 논란이 되풀이된 데 실망감을 드러내며, 정치권에 성숙한 의정 문화 확립을 촉구하고 있다.
“국감장이 화실인가”…논란의 시작
사건의 발단은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관 기관 종합감사 현장에서였다. 질의 순서를 기다리던 유영하 의원이 두꺼운 감사자료집 여백에 연필로 고릴라의 옆모습을 스케치하는 장면이 동료 의원의 휴대전화에 포착됐다. 해당 사진이 SNS를 통해 확산되자 여론은 즉각 요동쳤다. 국감 시청 누리꾼들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회의장에서 개인적 낙서를 즐길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그림 실력이 뛰어나다”는 색다른 평가도 나왔지만, 대체로 ‘의회의 신뢰’를 갉아먹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압도적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유 의원은 같은 날 오후 “세 차례 연속 격정적인 질타를 받으면서 호흡이 가빠져 잠시 손을 놀려 마음을 정리했다”며 “정책 논의를 등한시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감장 방청객으로 참석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유 의원은 답변을 듣는 동안에도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고 반박하며, 진정성 논란이 더욱 증폭됐다.
검찰개혁 공방 속 묻혀버린 ‘태도 논쟁’
올해 법사위 국감의 최대 화두는 단연 ‘검찰개혁 시즌2’로 불리는 직제·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개편안이었다. 첫날부터 여야는 검찰 권한을 어떻게 분배할지 놓고 초강도 설전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여전히 선택적 기소권을 행사하며 수사권·기소권의 분리는 미완’이라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부실 수사·부당 기소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검찰의 손발을 더 묶어선 안 된다’고 맞섰다. 언론의 관심은 당연히 양 진영의 날 선 공방에 쏠렸으나, 회의 직후 모든 헤드라인이 ‘유영하 고릴라’로 뒤덮였다. 한 방송사 국회출입 기자는 “검찰개혁이라는 구조적 논점을 다루는 대신 스케치 한 장이 뉴스를 장악한 건 국감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유 의원의 행위를 두고 ‘의원 자질 검증’이란 프레임이 형성되면서, 회의 내내 있었던 정책 질의·답변 기록이 뒤늦게 조명됐다. 유 의원은 검찰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검찰권 통제 기구를 별도로 두는 방안’까지 제안하는 등 평소보다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대중적 관심은 그림 논란에 집중되면서, 유의원의 정책 메시지는 사실상 파묻혔다. 이는 정치권 전반에 ‘이슈 소비 구조’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정책보다 자극적 에피소드가 클릭 수를 견인하는 미디어 환경 탓에, 입법기관이 이벤트성 이슈에 취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국회 내부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한 중진 의원은 “유영하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다수 의원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거나 민원 메시지에 답장하는 행위도 비일비재하다”며 제도적 장치를 주문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국감장에서 촬영된 ‘딴짓’ 스틸컷만 모아도 방대한 아카이브가 형성될 정도다. 이 때문에 스스로를 ‘감시자로서의 국회’라 부르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냉소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감 실시간 공개 시스템’이 고도화된 만큼, 의원 스스로가 보여지는 행위의 상징성을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야권 일각에서는 ‘고릴라’ 스케치가 단순 낙서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풍자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지만, 확인된 사실은 없다. 유영하 의원도 “고릴라 표정이 마치 초조해하는 제 모습 같아 그렸을 뿐”이라며 ‘풍자설’을 일축했다. 그럼에도 이미 SNS 밈으로 번진 탓에, ‘누가 고릴라인가’라는 패러디 게시물이 줄을 잇고 있다. 늦가을 정국이 여야 모두에게 살얼음판인 가운데, 사건이 사소한 해프닝으로 정리되기엔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의정 활동 품격 논의로 번지다
결국 논란은 ‘국회의 품격’을 가늠하는 거울로 확장되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국감장 질서 유지와 회의 집중도 제고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으나, 단순 행동지침만으로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민사회는 근본적 해법으로 ‘의정 평가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회의 출석률·질문 완결성·정책 성과를 계량화해 공개하면, 의원 스스로 태도 관리를 위한 동기가 강화된다는 취지다. 정치학계 역시 ‘의회 행태 연구’의 핵심 변수로 ‘퍼포먼스 정치’ 증가를 지목하며, 장기적 시선에서 제도 설계를 주문한다.
한편, 11월 초 예정된 종합감사 종결 시까지 추가적인 ‘딴짓’ 사례가 적발될 경우, 윤리특위 차원의 공식 경고안이나 징계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영하 의원은 본인 SNS에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며 자필 사과문을 올렸지만, 일각에서는 “사과를 글이 아닌 그림으로 하면 어떻겠냐”는 냉소적 댓글이 달리는 등 비판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국정감사는 한국 정치의 ‘가을 대하드라마’라 불려 왔으나, 늘상 등장하는 막장 소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도 검찰개혁·권력기관 견제라는 중량급 이슈가 깔려 있었지만, 고릴라 스케치라는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가 모든 담론을 삼켜 버렸다. 정치권이 시민의 피로감과 냉소를 해소하려면, 재미와 품격이 양립할 수 있는 새로운 의정 문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종합감사 종료까지 남은 일주일 남짓, 유 의원뿐 아니라 국회 전체가 ‘국감쇼’가 아닌 ‘국감답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